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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희
Hur Mun Hee
許文姫

개인전 13회 (제주, 서울, 부산, 광주)
2017 GALLERY2기획_‘Island’ 허문희 展 (Gallery2/서울)
2013 맥화랑 기획 초대전_전경선. 허문희 2인전(갤러리맥/부산)
2010 ART EDITION 2010-벨트아티스트 프로젝트 우수작가 특별전(벡스코/부산)

 

초계청년미술상
공간국제판화비엔날레 입상
2010 ART EDITION 벨트아티스트특별전 최종우수작가
2009 PRINT BELT2009 선정작가
제주우수청년작가상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청년작가상
한국현대판화가공모전 Art In Culture상
제주특별자치도 미술대전 판화부문 –대상. 우수상
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미술은행, 제주도립미술관 외 다수

불가능한,
감추어져 있는 것들과의 마주함

 

안소연 (미술비평가)

 

허문희의 그림은, 언뜻 동화의 한 장면처럼 서사적이고 또한 수수께끼처럼 모호하다. 구체적인 배경과 형상이 화면을 구성하고 있지만, 사실 모든 상황에 대한 묘사는 익명에 가까울 정도로 불확실한 것 투성이다. 그간 그녀가 자신의 작업을 통해 주목해왔던 화두는 “시간”, “기억”, “비밀”, “집”, “섬” 등과 같은 것으로, 주로 그러한 것들이 환기시키는 한 개인의 내밀한 경험과 그에 대한 불완전한 정서가 두드러지게 다뤄졌다. 이는 초현실주의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현실과 무의식 혹은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의 중첩된 이미지를 통해 불완전한 주체의 이중의식을 강조한다. 이번 전시 《섬》에서도, 허문희는 특유의 침착한 어조로 자신의 기억과 그에 대한 초현실적 상상 및 강박적 회귀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전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제주 출신의 그녀는 자신의 고향이자 거처인 “섬”을 작업의 주된 원천으로 삼아왔다. 이는 섬이라는 특수한 지리적 조건에 축적되어 있는 심리적 경험과 초현실적 상상을 연상시킨다.

 

| 감추어져 있는 것들

 

허문희의 그림에는 장난감 집이나 인형, 오르골 등이 자주 쓰인다. 이를테면, (2016)에서는 캔버스 화면 가득 채우고 있는 장난감 집이 하나의 무대 세트처럼 배경을 차지하고 있다. 2층짜리 내부 구조가 훤히 보이도록 한쪽 벽면을 떼어 놓은 이 모형은, 시선이 공간 바깥에서 안을 향한, 말하자면 외부에서 내부를 들여다보고 만지작거리며 상상의 놀이를 즐기는 장난감이다. 그런데 허문희의 그림에서는, 그 장난감 집 안에 들어가 무언가에 골똘히 빠져들어 있는 어린 소녀의 뒷모습이 비현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층간을 뚫고 앉아 있는 소녀에게 이 “빈 집”은 여전히 장난감 모형일 뿐이지만, 그것을 만지작거리며 노는 현실에서의 자리가 그만 상상의 공간과 뒤섞여 버렸다. 일어설 수도 돌아앉을 수도 없이 집 안에 갇혀 버린 소녀는, 정작 그 고립된 현실의 상황을 잊은 듯 혹은 잊으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눈앞의 놀이에만 푹 빠져있다. 마치 “포르트-다(fort-da)” 놀이를 연상시키는 이 장면은, 현실에서의 고립과 상실을 극복하려는 주체의 강박적인 이중의식을 드러낸다. 원초적 타자인 어머니와의 분리를 경험한 어린 아이가 어머니가 사라진 텅 빈 문을 향해 실타래를 던졌다가(fort/저기에) 끌어당기는(da/여기에) 반복적 발화 행위로 상실을 극복하려 했던 것처럼 말이다.

 

허문희의 그림 속 공간은, 현실에서의 원초적 고립과 그에 대한 대체물로서의 상상적 유희가 애매하게 중첩된 초현실적 상상을 극대화시킨다. 그리고 나를 더욱 흥미롭게 했던 점은, 의 배경이 된 상상의 집이 그녀의 작업실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수집품들 중 하나인 것과, 그것이 그림 속 어린 소녀처럼 현실을 잊은 채 스스로 초현실적 공간을 만들어 끊임없이 그 안으로 도피해야만 했던 그녀의 무의식적 충동에 대한 하나의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렇듯 이 지닌 이중의식은, 소녀의 장난감 집처럼 상상의 공간이 놓인 현실의 자리에서 더욱 뚜렷해진다. 그것은 바위 꼭대기에 위태롭게 균형 잡고 서있는 집을 보는 것처럼, 수많은 현실의 경계 위에서 뭐라 말로 설명하기 힘든 언캐니(uncanny)의 정서를 공유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2017)도 비슷한 구조다. 한 여인이 소라 껍데기를 머리에 뒤집어쓴 채 바닷가 바위 위에 홀로 서 있다. 동명의 제목으로 예전에 그린 (2013)과 비교해 볼 때, 배경과 구조에는 큰 변화 없이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만 소녀에서 젊은 여인으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몇 개의 정황 속에서 짐작컨대, 동일한 장소를 배경으로 과거와 현재가 중첩돼 있고, 꿈과 현실이, 삶과 죽음이, 상실과 욕망이 충돌하듯 뒤섞여 끝없이 교차하고 있다. 또한 현실의 마술 같은 그 교차점에서는, 감추어져 있던 것들이 희미하게 나타난다.

 

| 보이지 않음과 마주함

 

어떤 보이지 않는 신호들이 깜박거리는 듯한 수수께끼처럼, (2015)은 모호한 기호들이 화면에 가득하다. 그림에서는, 청명한 바람이 지나가는 청보리밭 풍경을 가로질러 난파된 배처럼 깊은 잠에 빠진 작은 나룻배의 내부 공간이 훤히 드러났다. 하지만 현실의 시공에 길들여진 시선으로는, 잠들어 있는 무력한 공간에서 보내오는 보이지 않는 신호들을 알아채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허문희는 그렇듯 네 개의 캔버스를 이어 붙여 거대한 화폭을 마련하여, 역설적이게도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다시 말해서 하나의 시공으로 도무지 접합할 수 없고, 단일한 시선으로 전체를 볼 수 없는, 모호한 시차 속에서 분절되고 겹쳐진 초현실적 환상을 구축해 놓았다. 보이지 않음과 마주한다는 것은 상당히 모순된 말인데,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그림에 나타난 노골적인 공간의 병치와 시차를 통해 보이지 않음과 마주해야 하는 불가능성에 기꺼이 다가가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두 점의 (2016) 연작에서도 응시의 파열이 끊임없이 되풀이 되고 있다. 허문희는 키우던 개의 죽음을 기억하면서, “부재의 현전”과 대면할 수 있는 지점을 구체적으로 고민한 듯하다. 서로가 서로의 응시를 비켜서 있는, 그렇지만 현실의 빈 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존재를, 그녀는 조명하고 있다. (2017) 연작도 마찬가지다. 누적된 시공간의 층위를 증명하는 오래된 숲은, 사실 현실에 드리워진 일련의 베일처럼 현실과 현실 너머의 응시를 차단하면서 동시에 그 경계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상상을 더욱 극대화 시킨다. 때문에 허문희의 그림에서, 애초에 불가능한, 감추어져 있는 것들 혹은 보이지 않는 것들과의 마주함을 감행하려는 작가의 사유가 솔직하게 배어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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