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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환
kang tae hwan
姜太皖

개인전 6회
2018 제 1갤러리 라이브러리 존, 켄싱턴 제주호텔
2017 현대미술관, 제주 외 다수
단체전 80여회
수상경력 2018 가송예술상 대상 (가나아트센터, 가송재단, 동화약품)
2016 제주 신진예술가 지원사업 선정
2011 제 18회 제주청년작가전 우수청년작가 선정
2011 대한민국 미술대전 비구상부문 특선
2010 제주특별자치도 미술대전 대상 (2년연속) 외

강태환의 틈_비워져야 사는 어떤 공간에 대한 이야기

이나연_미술평론가

“돌을 자연성 그대로 한없이 인간에게 다가오게 하는 일. 철판을 인공성을 띤 채 한없이 자연에 다가가게 하는 일. 서로의 다가감은 제3의 그 무엇에, 하나로 맺어진다. 그리고 겹쳐진 그 어긋난 부분이 세계의 통풍을 가능하게 한다.” – 이우환

틈이란 긍정을 의미하던가 부정을 말하던가. 빈틈없다는 표현은 칭찬이던가 욕이던가. 빈틈이 많은 사람은 좋은 사람이었나 나쁜 사람이었나. 그나저나 틈이라는 건 비어있는 것인데, 그렇다면 있다는 건가 없다는 건가. 이런저런 이분법에 빠져 한참을 틈에 대해 생각했다. 강태환의 작업을 보면서 그랬다. 영어로는 갭(Gap). 경우에 따라 간격, 공백, 격차, 구멍, 빈자리, 차이, 사이 등으로 변용 가능한 단어가 틈이다. 강태환의 틈은 사실상 모든 의미를 안는 틈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 제주의 자연 속에서 작가의 눈엔 틈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정글과 같이 빽빽한 곶자왈 속에서도 언제나 틈은 있었고, 숲길의 나무들 사이에도, 돌과 돌을 쌓아 만든 돌담 사이에도 언제나 틈이 존재했다. 제주의 명물인 바람, 그 바람이 지나는 길이 곧 틈이다. 드센 바람에 담과 나무가 넘어가지 않기 위해선, 아이러니하게도 촘촘해지기보단 틈이 있어야 했다. 바람골을 터줘야 했던 것이다. 바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길을 내어주면서, 바람과 나무는, 바람과 돌은 공존할 수 있었다. 사람은 이제 자연에게서 배워 틈을 비워두는 지혜를 익혔다. 그러고보니 빈틈이 있다는 건 좋은 의미이고, 빈틈없다는 건 욕이었나 보다.

제주에서의 틈이란 그렇게 바람이 지나는 길이다. 그래서 틈을 말하는 강태환의 작품엔 바람이 함께 있다. 촘촘한 광섬유로 연출된 숲 사이에서 바람이 들고난다. 갑갑한 전시장 속에서 선선한 바람길이 열린다. 그 바람길의 중간에 의자가 놓여있어 잠시 앉아 쉴수도 있고, 회오리로 말려 올라가는 바람의 형상이 언뜻 보이기도 한다. 바람이 형상화된 파도의 이미지가 찍힌 제주의 풍경도, 서늘한 은색반사판의 구획에 따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종잡을수 없는 바람의 시선처럼, 잘리고 나뉘어진 시각들이다. 공간과 매체를 넘나드는 틈도 있다. 프로젝터 영상으로 곶자왈의 틈을 갤러리 벽에 비춘뒤, 그 틈과 갤러리 옆벽을 틈이 많은 붉은 실로 연결했다. 나무틈에서 뻗어나온 햇살처럼 연출된 실로 만든 공간 드로잉은 사실 광섬유를 사용하기 이전에 작가가 주로 관심을 두는 재료였다. 실이 공간에 한 줄 두 줄 드리워지면, 갑자기 그 실 사이에는 틈이 생긴다. 단순한 선이 몇 개 지나감으로 공간이 틈으로 변모한다. 2015년부터 가장 최근까지 진행된 이 작업들은 모두 작가에 의해 이라 명명됐다. 광섬유와 실을 하나의 선으로 보고, 그들이 공간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입체적 개념의 드로잉으로 본거다. 그런데 갭 드로잉이라니. 비어있어야 존재가 가능한 틈이 드로잉으로 그려진다는 건, 틈 주위를 그린다는 말이 되므로 아이러니다. 드로잉에 필요한 선들은 결국 틈을 드러내기 위한 보조수단일 뿐이니까. 그러고보니, 작가의 주재료는 바람과 공기, 공간이고, 물리적 재료들은 액자일 뿐이구나 싶다. 그렇게 바람처럼 지나가는 성찰을 이 끌어내줬다.

실과 광섬유로 재료에 대한 관심이 옮겨가기 이전 작업은 사실 조금 더 육중했다. 바람이 지나갈 자리를 남겨두긴 했지만 실이나 광섬유처럼 밝고, 실처럼 가벼운 단순한 형태의 조형물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이런 작업들: 거울처럼 잘 반사되는 스테인레스 스틸판 위에 이끼가 낀 동그란 공이 올려져 있었다. 다른 작품은 이끼가 낀 ‘자연산’ 제주현무암들이 바닥에 놓여있고, 반짝이는 스테인레스판이 기울여져 놓였다. 한 작품 더 설명하자면, 역시 자연산 현무암들이 쌓여 네모난 단이 만들어진 위로 동그란 구형의 스텐인레스가 놓여, 돌을 비추고 공간을 비췄다. 이 일련의 시리즈의 제목은 였다. 그리고 굴곡이 있는 스테인레스판 위의 나무조형물처럼 현무암을 세워놓은 작품과 삼각과 사각 등 기하학적인 스테일레스 구조물 사이에 틈을 두고 현무암을 넣은 시리즈는 이라 불렀다. 사실 작가의 대표작들은 대개 과 에 포함돼 있다. 이우환의 돌에 대해 말한 문장을 떠올리며, 더 많은 생각의 틈을 열어 둔다. 이우환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사용하는 돌은 특정한 이미지나 형태를 필요로 하지는 않으나, 애매하고 규정하기 어려운 것, 바로 ‘그 돌’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불투명하고 개별적인 존재성이 보는 자와의 대화를 더욱 직접적인 것이게 하고, 개념성, 추상성을 넘어 외계와의 연락을 한층 더 리얼한 것이 되게 한다. 돌은 철판과 짜맞추어지기도 하고, 공간과 관계함으로써 그 개별성을 훨씬 고유한 것, 정녕 거기 있는 것으로 높인 셈이 된다.” 이우환, ,김춘미 옮김, 현대문학, p.86
강태환의 돌은 특수한 제주지역의 현무암을 사용하고, 그 현무암에 이끼를 이식하기도 하는 등 작가의 개입이 적극적인 특정한 ‘그 돌’이다. 하지만, 돌이라는 자연물과 스테인레스판이 만나 공간과 관계한다는 점에서 이우환의 개념과 통한다. 자연물인 돌이 가진 강한 이미지를 스테인레스판으로 중화시킨다는 점도 이우환의 작품들과 공통된다. 강태환의 대표작들을 설명하기 위해 이우환의 개념을 좀더 빌리자면, “돌의 의미나 존재 그 자체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작품에 의해, 현실을 자극적이고 신선한 눈으로 볼 수 있게 하고, 연동하는 세계의 무한의 문을 열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이제 강태환은 이우환의 돌과 철판에서 한걸음 벗어난다. 현실을 신선하게 보는 다른 방식으로 강태환은 돌을 넘어, 그 돌들 사이에서 발견한 틈에 주력하게 된 듯하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강태환은 대표작들과 시각적인 차이가 많이 나는 신작인 을 소개한다. 무거움과 가벼움을 넘나들며 틈을 연구하는 작가의 가벼워진 최근작들을 감상하는 기회다. 이우환은 줄곧 작품의 무한성에 관해 고민하며, 여백으로서의 공간의 힘에 의해 작품은 무한성을 갖게되는 것이라 작품론을 펼쳤다. 이우환의 여백과 닮은 강태환의 틈은 어디까지 확장될지 지켜볼 시작점에 놓인 작품들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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