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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림
Oh, Chang-Rim
吳昌林
少荃

1982-1997 濟州大學校 一般大學院 史學科 博士修了 素菴玄中和師事
대한민국미술대전서예부문 입선3,특선2
무등미술대전연특선3회, 우수상, 동추천작가
제주특별자치도미술대전 서예대상수상
동 초대작가 개인전 3회
협회전 및 교류전 다수 참가
金光協 수선화 시비 휘호 제막
吳眞祚 시비 휘호 제막
慧觀精舍 如來全身七寶妙塔 현판 휘호 제막
서귀포소묵회 회장(제13대歷)

오창림 書展에 부치는 斷想

 

(사)한국문자문명연구회장 金鍾源

 

“百尺竿頭進一步”라는 禪家의 語句와 易經의 “獨立不懼”라는 어구가 오창림의 서예전에 대한 短評을 앞두고 나의 뇌리를 지배하고 있음은 어떠한 연유인가? 사뭇 내가 나 자신에게 궁금한 사항이다. 왜냐하면 이 말은 수없이 반복하여 나 자신에게 던져두고 있는 절체절명의 나만의 심미적 명제이기에 오창림의 서예전에 관하여 몇 마디 감상의 소견을 말해야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오창림의 서예심미의 결과로서 이루어지는 전시회의 성격이거나 그의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서예미학의 탐구방향이 나의 경우와는 그 적용의 방향이 같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같지 않다고 단정지울 수 있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어쨌든 좀처럼 다른 말이 생각으로 나타나지 않아 곤혹스러운 상황이 나의 내면을 한동안 지배하였다.

아마 오창림의 서예에 대한 공부의 시간적 투자는 삼십 여년을 더하고 있는 줄 안다. 그는 또한 나와 소암 현중화 문하의 선후배로 인연이 맞닿아 있음으로 하여서 그에게 선배로서 할 수 있는 말이란 무엇이며 비평자로서 할 수 있는 말이 또한 무엇인지 다른 듯 기실 다르지 않다고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도 보아진다.

 

서예미학 탐구이거나 일상의 심미 활동에 있어서 나는 나 자신에게 師承관계에서 오는 한계성에 대하여 매우 냉혹한 비판을 가하고 있고 그로 인하여 파생되는 몇몇의 독설도 달게 감수하고 있기에, 어쩌면 오창림에 대한 나의 애정이 이 두 어구로 집약된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의 결론으로서, “백척간두진일보”와 “독립불구”라는 이 말이 선배의 입장과 비평자의 입장을 동시에 아우르는 적절한 말이라는 판단이 서기까지의 혼란이 그 곤혹의 실체라고 말할 수 있다.

 

오창림이 소암의 문하에서 익힌 서예적 소양의 깊이와 넓이의 한계성은 그가 작가로서의 독립을 주장할 때 분명하여지고 이를 여하히 그는 탈출하여 극복하고 있는지에 대한 탐색이 이번 개인전에 대한 나의 관점이다. 그리고 돌이켜본다면, 이는 또한 내가 풀어야하는 나의 현재적 문제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자면 나의 현재진행형인 문제가 오창림의 서예전을 두고 바라보는 나의 비평적 관점이 되는 현실이 당혹스럽다고나 할까? 뭐 그런 것이 현실적으로 우리들 소암의 문하들이 가지고 있는 풀어야하는 화두가 아닐까 한다.

 

한 분야에서 窮極에 이르는 과정은 험난한 공부와 갈등과 유혹의 길목을 수없이 견뎌내는 그러한 고통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과정의 마지막에 절체절명의 승부수가 있음을 우리는 모두 체험적으로 다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승부수는 불확실한 경계의 저편에 두려움의 대상으로 현실적 접근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그러한 곳에 있어 보인다. 그리하여 궁극의 언저리에서 주어지는 현실적 성공의 安穩함에 거개가 실질적 만족을 누리며 다음세계 즉 대자유의 표현세계로 일신된 진면목을 찾아내는 심미의 탐험을 방기하곤 하는 것이 昨今의 이른바 예술계의 張三李四들이 누리는 인생살이 이다.

 

그러나 오창림은 그들처럼 일상에서 그러한 허다한 재미로운 일을 더불어 놀이할 수 있음에도 이를 且置하고는 현실적 보상이 전무한 외통수 적인 서예심미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지극히 외롭고 자기만족적인 심미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는 이 작업에 오창림은 왜 물질적 정신적 괴로운 투자를 하여오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근 삼십년을 이 일에 종사한 결과에 대한 자신만의 성취감과 자부심에 대한 나의 판단은 유보한다. 다만 그러한 가치관의 결과로서 그의 서예작품이 지니는 풍격의 현실적 성과는 여하한지 이 전시를 통하여 세상에 물어볼 그 무엇이 있어 보인다.

 

오창림의 스승인 소암은 魏晉南北朝 서풍에 대한 일본적 해석 분위기를 基調하여 냉엄하고 素直한 정신세계를 서예정신으로 환치하는 표현정신을 거의 절대적으로 門下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에 대한 오창림의 수용방법과 자기류로서 표현적 전개양식은 아직 미지수이긴 하지만 위진남북조의 서예에 대한 이해의 방법은 동아시아 삼국의 경우가 사뭇 다르게 전개되어 현장에서 서예표현의 기법으로 지역적, 개인적 자기 기준을 두고 있음에 눈을 두고 있음을 전출된 작품에서 감지된다.

 

스승인 소암의 서예적 심미자세는 眞率, 直情, 純實한 정신세계를 운필 용필법에 가탁하여 결구와 장법에 적용하는 경우이다. 그리고 필획의 澹泊 醇雅한 경지는 한 치도 오류를 용납하지 않는 결벽성을 내보이고 있다. 이는 소암의 천성적 미의식과 환경적 가치관이 더하여진 소암의 독자성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러한 경계를 문하의 제자들이 한결같이 추종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창림의 이번 전시회에 나온 작품에서 나는 그가 해결하고자 하는 몇 가지 깊디깊은 自己類의 審美的 苦惱를 읽을 수가 있다. 그 고뇌의 해결책으로 나는 “백척간두진일보”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고 그런 뒤에 자유 자재한 심미 표현적 “獨立不懼”의 경계에 들어 설 수 있다고 나는 간곡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위진남북조의 서풍에 대한 일본적 이해라는 말이 주는 한계로 인하여 오창림의 서예정신이 사뭇 잘못 해석할 수 있는 한국적 상황이 있기에 소암의 서예 사승관계를 살펴 오창림과의 인과적 결과를 엿볼 필요가 있다. 소암의 스승인 일본의 두 사람 즉 松本芳翠와 辻本史邑은 근 현대 일본서단의 거장이다. 관동지역 즉 東京을 중심으로 활동한 松本은 “芳翠流”라는 서풍으로 일본열도를 진동시킨 인물이고, 辻本은 관서지역 즉 大坂을 거점으로 한 서단의 맹주였다. 優美한 서풍의 松本과 質澁한 서풍의 辻本의 문하에서 단련된 소암의 미의식 전개는 국내인 들에게는 생경하였다고나 할까?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일본 글씨라고 냉소하던 인간들을 나는 수없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근시안이었는지 지금은 세상이 안다.

 

왜냐하면 松本과 辻本의 스승은 近藤雪竹으로 그는 고전주의자이다. 그리고 그의 스승은 현대 일본서단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日下部鳴鶴이다. 鳴鶴의 스승은 청나라 금석학자이자 지리학자인 楊守敬으로 明治書壇의 은인으로 칭송되는 인물이다. 이 양수경이 일본의 전래적 서풍을 鳴鶴을 통하여 이른바 六朝書風으로 전환시킨 인물이다. 양수경의 금석 서예의 스승은 청나라 대학자인 潘存으로 그의 육조서예에 대한 본질적 철학적 이해는 당대 최고라는 것이 서예역사에서 증명된다.
말하자면 소암의 서풍의 본질적 근저는 潘存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사승관계에서 선명한 사실 하나는 누구도 스승의 서풍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고 兀然히 독자적 세계관으로 서예미학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松本의 제자 중에서 현대의 津金鶴仙은 전혀 독자적 심미전개를 통하여 日展을 左之右之한 인물이다. 그들의 서예 표현은 서예 그자체로서 존재하고 있지 국내인 들이 비아냥거린 일본글씨(?)가 아니라는 점을 직시해 둘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오창림이 겨누어야할 미학적 목표가 현실적으로 분명해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서예 심미의식의 소양과 전개라는 측면에 있어서 스승에 대한 맹목적 추종의 자세에서 노예가 되고, 성찰로서의 배반과 반성적 성찰에서 내가 주인이 된다. 왜냐하면 심미는 “發見”이고 “悟覺”에 그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見性”이 또한 심미의 결과적 자리에 밝게 서있다. 또한 심미의 결과로서 미의식의 표현은 전개를 담보하고 있다. 그 전개는 萬人을 상대하되 눈 밝은 한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기도 하다. 예술로서 서예의 역사에서 각 시대적 상황이 몰고 온 미학의 전개가 우리의 공부 대상이지 결과물에 대한 安住가 공부의 진정성이 될 수 없다. 시대정신의 수렴으로서의 서예에 대한 공부, 그 곳에서 발견과 오각과 견성이 자리한다고 본다.

 

소암 문하로서의 오창림과 시대의 존재로서 오창림의 서예적 존재성은 어디에 있어야 할까? 師承의 정신성은 발견과 오각과 견성의 경계로 그 방향이 설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소암의 스승들이 견지한 심미자세에 대한 오창림적 해석이 요구되는 시점이 아닐까한다.
이에 대한 오창림의 긴 彷徨을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佛家에서의 한동안 머문 사연이 여하히 그의 서예심미에 전달되고 있는지 이번에 전출된 작품에서 분명히 顯現되고 있다. 필획의 淡雅한 전개와 장법의 淳質함이 그 근거로 보인다. 물론 소암의 餘薰이 그의 서예 심미세계를 감싸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위진남북조의 서풍에 대한 본질적 이해에 있어서 오창림이 견지해야할 심미적 관점이 그의 긴 방황의 결과로서 분명해진다면 이에 대한 불식은 하루아침의 문제로 보인다. 다만 방황의 결과로서 果斷한 斬釘截鐵의 실질적 행동이 심미적으로 발현되는 그 곳에서 그 것은 가능하다고 하겠다.

 

左顧右眄하는 盜美적 자세가 판치는 현실의 서예세계에서 나만의 주장은 지극히 힘든 현실이나 그 것만이 살아있는 존재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서예의 역사와 師承의 역사에서 확인하고 그러한 역사 속에서 서예의 절대정신이 무엇인지 서예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역사인식의 새로운 시각을 이번 전시회를 통하여 자각하는 一大契機가 된다면 그는 분명 “백척간두진일보”의 경계를 넘어 “독립불구”라는 再生의 세계로 자유자재한 서예의 경지로 들어 설 것임을 확신하다. 부디 나의 이 蕪辭가 오창림의 서예적 완성에 이르는 指南이길 빌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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