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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애
Park Ju Ae
朴主愛

2014. 제주대학교 예술학부 서양화과 졸업
[2018] “oh open house-Tours Emeraldhill”-식민주의 식물학 , Emeraldhill (싱가폴)
“Conectivity- jeju” , 대안공간루프 (서울)
[2017] 제주비엔날레 “투어리즘”, 제주도립미술관 (제주)
“로터스 랜드”, 광주아시아문화전당 (광주)
2017 시즌 2 레지던시 오픈스튜디오&전시 , 뉴욕 브루클린 나르스파운데이션 (미국 ,뉴욕)
[2016] “피를 데우는 시간” 개인전, 아트스페이스 씨 (제주)
“AR TOWNS: 와랑 와랑 모다드렁”전, 제주도립미술관
“로컬 투 로컬 이종교배: 지역으로부터 정치”, 아트포럼 리 (부천), 오픈스페이스 배(부산)

“청춘을 달리다”전, 제주도립미술관 (제주)
[2015] “아트 &아시아 제주” 전, 제주컨벤션센터 (제주)
청년작가 초대전 “현장”전, 제주문예회관
청년작가전 “결별”전, 제주 이중섭미술관

” 피를데우는 시간 ” 전시평론 시간과 공간을 유영하며 잉태하는 슬픔 – 김지혜(미학)
삶도 죽음도 머무름에 기인한다. 모든 인간은 한때 어머니의 몸속에 거주하였고, 그 안에서 미비한 세포를 키워내며 성장하였다. 즉 어머니는 최초의 집인 셈이다. 그리고 우리는 얼마 간 머무르던 그 집을 떠나 바깥세상에서 시간과 공간을 유영하며 사건을 만들고 겪으며 살아간다. 언젠가 이 생이 끝나리라는 진리와도 같은 예언을 부여받은 채. 박주애의 작업들에서는 이러한 탄생과 소멸 그리고 그 사이에 펼쳐지는 지난한 생의 스펙트럼과 함께 생에 대한 진리와 예언이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알 수 없는 깊은 슬픔이 함께 거주하고 있다.
롤랑 바르트는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쳐온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한 이후에 남긴 메모들을 모아 『애도일기』라는 책을 펴낸 바 있다. 거기에 보면, 그를 점령한 슬픔은 “사랑의 관계가 끊어져 벌어지고 패인 고랑”과도 같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물리적인 죽음은 정신의 탯줄을 온전히 끊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한 연유로 바르트는 어머니의 흔적을 되살리고 키워내는, 즉 어머니가 과거에 자신의 몸 안에서 그를 키워낸 것과 같은 작업을 반복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 박주애의 어머니 또한 작가이다.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작업 공간을 사용하며, 함께 일을 하고, 함께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출생의 순간 분리된 두 육신은 아무리 같은 시공간을 공유한다 하더라도 둘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작가 역시 근본적인 불안과 고독을 지니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어머니와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정신의 탯줄을 지탱해오고 있으므로 그 불안과 고독은 정착과 유목을 반복한다. 여기서 그녀의 어머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그녀의 작업에서 자주 등장해온 모티프들, 이를 테면 집과 식물 그리고 물 등은 모두 모성과 연결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기록한 작가노트에는 어머니의 어머니인 외할머니가 자주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의 초기 작업들에서는 집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그 집들은 하나같이 녹아있거나 훼손되어 있어, 집이 근원적으로 지니는 목적에 충실하지 못한 상태로 등장한다. 아마도 이는 박주애가 한때 머무르던 과거의 집(실제의 집과 어머니의 자궁)이 지녀온 내러티브가 현재까지 연결되지 않고 단절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고로 현재의 그 공간은 완벽한 침묵의 장소로 치환되었다.) 그녀는 과거 그 공간 안에서 펼쳐지던 일상의 사건들과 그것들의 소멸에 주목한다. 가을에 흠뻑 빠져들 틈도 없이 불현 듯 찾아오는 겨울처럼, 관성과도 같던 과거의 시간과 사건들 역시 내가 그 안에 완전하게 용해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새로운 시간에 늘 자리를 내어준다. 누구나의 과거에 애달픔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리라.
물 또한마찬가지이다.우리는세포로존재하던시절,체온과같은온도의물속에머무른바있다.그런연유로물은우리에게안정감과쉼을허락한다.하지만또한물은죽음의 공포를 발현하는 요소이기도 한다. 박주애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목욕탕은 이러한 이중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는 듯 보인다. 우선 모든 이들이 나신의 상태에서 인간이 아닌 다른 포유류와 어류의 상체를 덧입고 목욕탕 안에 몸을 담그고 있는 설정에서 우리는 이를 엿볼 수 있다. 그 원형의 세계는, 작가의 말대로 복잡한 하루의 노곤함을 씻어내는 장소이면서, 생명을 잉태하는 근원의 세계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생의 온전한 휴식처인 죽음의 세계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은 생에 대한 욕망과 함께 죽음충동 역시 지니는데, 그러한 죽음충동은 생명 발생 이전의 상태, 원초로의 회귀를 목적으로 한다. 고로 이러한 충동은 삶과 죽음, 존재와 비존재의 모든 구분을 무화시키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비존재로 돌아가 죽음 없는 세계에 거주하고자 하는 욕망과 다르지 않다. 박주애가 만들어낸 반인반수의 모습들 역시 인간과 비인간 그리고 문명과 본능의 구분을 지우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그러한 구분이 사라졌기에 매우 원초적이며 자유로워 보인다.
작가는 이번 전시의 제목을 ‘피를 데우는 시간’이라고 정했다. 생명이 유지되는 동안 우리의 심장은 뜀박질을 지속하며, 피를 데우며 흐르게 한다. 그 피의 온도가 외부 환경의 그것과 같아지는 순간은 아마도 생의 시간이 종료된 뒤일 것이다. 아마도 청춘의 시절 가운데 머무르고 있는 작가에게는 아직도 생의 에너지가 충만한 듯하다. 고로 그녀에게 ‘피를 데우는 시간’은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서도 불길과도 같은 생 안에 자신을 던지는 시간일 것이고, 그림을 그리는 시간일 것이다. 그 시간이 그녀의 작품 안에 더욱 많은 고랑을 만들어내어, 그 안에서 이 세상에서 소멸한 것들을 다시금 살려내는 사건을 만들어내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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