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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근
park jungkeun

박정근은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주로 사회에서 목소리가 크지 않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이들의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2016년 제주 해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모색한 작업 시리즈 [잠녀](열화당)를 통해 책으로 묶어냈다.
2017 KT&G 상상마당 올해의 작가를 비롯 다수의 전시 및 수상경력이 있으며, 최근 진행 중인 작업은 제주 바다밭 기록, 4.3 항쟁 희생자 가족 사진과 영상 작업을 하고 있다.

[물숨의 결] – 화석이 되어버린 해녀 불러내기

 

본 작업은 자본주의의 욕망의 universality와, 욕망의 다양한 사회적 발현을 제주 해녀의 물숨을 통해 제주의 자연 위에 풀어낸다. 물숨이란 해녀들이 입수 전 들이마시는 깊은 숨을 이르며, 물숨 한 번을 머금은 해녀는 약 2 분 가량 잠수하여 해산물을 잡아올린다. 물숨을 머금은 해녀의 얼굴을 수면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여 그 ‘결’들을 기록함으로써 본 작업은 해녀를 역동적이고 현대적인 맥락으로 재해석한다. 지금껏 해녀는 이미지로 가공될라치면 흑백의대비로 그려져 향수로 점철된 어머니상에서 탈피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숨가쁘게 변해가는 제주에서 내가 만난 해녀는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는 다양한 역할을 살아내며, 자본주의 사회의 종종 이기적인 욕망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추구하고 실현하고 있었다. 다만 욕망을 실현하는 수단이 사회의 대다수보다 자연의 제약을 더 받으며, 그들의 사회는 공동체 의식이 이익추구라는 가치와 꽤나 안정적인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달랐을 뿐이다. 이러한 욕망과 자연, 그리고 전통적 가치의 충돌을 난 제주 해녀의 물숨이 빚어내는 결을 통해 읽었다.

 

개인의 이익을 실현하려는 욕망은 제주 해녀들이 매 번 물숨을 머금을 적마다 제정신이 아닐 만큼의 힘든 노동을 견뎌내는 근원적 동기이다. 그러나 욕망과 다른 곳에서 기원한 해녀의 몸은 물숨길이만큼의 욕망만 채우기를 그네들에게 허락한다. 채워지는욕망의 길이를 조금 더 연장하려는 해녀의 안간힘과 신이 인간의 육체에 지워놓은 한계가 충돌하는 접점에서 해녀의 얼굴에는 결이 하나 둘 빚어진다.

 

이러한 해녀의 주름결위로 또 다른 결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는 그 곳,바다에서 만들어지는 무수한 형상과 깊이의 물결이 때로는 굵은 선으로, 때로는 세밀한 터치로 해녀의 얼굴에 결이 되어 척척 드리워진다. 내게 이 물결은 인간의 육체라는 자연 너머 다른 범주의 자연에서 물숨을 머금은 인간의 욕망에 선을 긋는 또 다른 한 겹의 한계이다.

 

두려울 법도 하건만 그들은 저 배경으로 보이는 청빛 암흑의 바다 심연으로 물 속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거침없이 자맥질한다. 해를 거듭하는 욕망을 향한 해녀의 자맥질을 받아내는 바닷물과 바닷 속 밭 등의 자연은 고무재질로 된 해녀의 잠수복 (물옷)에 끊임없이 생채기를 낸다. 물옷은 또 다른 결로 인간의 욕망과 자연의 충돌을 기록한다.

 

인간의 의지를 겹겹이 한계짓는 자연에 도전, 순응, 타협하는 데는 개인의 욕망 일부를 희생하여 공동체 내 약자들의 필요를 채워주도록 진화한 그들의 제도로 인함이 아닐까. 제주 해녀들이 현대 자본주의를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욕망은 범사회적, 범문화적이다. 해녀가 물숨을 머금는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얼굴의 주름결과 물옷에 조금씩 하지만 쉴 새 없이 음영이 깊어지며, 얼굴결에 드리워진 물결이 한 순간도 고정되지 않는 것과 같이. 그러나 제주 해녀가 욕망을 추구하는 방식에는 욕망과 배치됨에도 불구하고사회를 지탱하는 또 다른 가치가 굳건히 자리하고 있으며, 이것이 제주 해녀들의 자본주의를 다른 사회의 그것과 차별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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