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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호
Park Ki-Ho
朴基鎬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및 교육대학원 졸업

 

2015년 박기호돌하르방조각전 (벌랑갤러리, 제주)
2014년 마카오아트페어 (Cosmopolitan Cultures & Fine Art Fair, 마카오)
2010년 제1회 인사화랑미술제 개인전 <박기호조각전> (애니갤러리, 서울)
2010년 멜버른아트페어 (Art Melbourne, 호주)
2004년 오키나와미술가연맹 합동교류전 (오키나와현립미술관, 일본)
2001년 제주국제메일아트전 <평화의 섬>
1997년 거장과 오늘의 기수전 (Salon Grands et Jeunnes d’aujourd’hui, 브랑리, 파리)
1993년~1994년 현대미술교류전 (한밭도서관, 대전/부산문화회관, 부산)
1988년~1990년 제주특별자치도미술대상전(대상, 특선 2회) 입상

제주의 전통적인 돌하르방을 소재로 한 조각 ‘돌하르방’ 연작이다. 돌하르방은 ‘돌할아버지’라는 뜻으로 성문 앞에 장승처럼 돌하르방을 세워 마을의 안전을 빌었던 수호신 격의 석상이다.

 

제주에 돌하르방이 처음 세워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450여 년 전, 영조 때였다.
제주에 흉년이 자주 들어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죽는 사람이 늘자 김몽규 목사가 중국의 옹중석을 세워 원귀가 드나들지 못하도록 했다. 옹중이란, 사람의 이름으로 중국 진시황 때 완옹중을 말한다. 진시황제는 거인 완옹중을 시켜 흉노족 등 북방 침략자를 토벌하여 격퇴했다. 흉노족은 옹중을 보기만 하여도 혼비백산하여 도주하였다고 전한다. 그래서 돌하르방의 원래 명칭은 그 장수의 이름을 따서 문헌에는 ‘옹중석’이라고 표기했다.

 

그리고 제주도의 삼읍성이었던 제주목·대정현·정의현 등 지역에 따라 부르던 명칭과 형태가 각기 다르다. 즉 제주목은 우석목이라 불렀고, 대정현은 무성목, 정의현은 벅수머리라고 불렀다. 대체로 제주목의 돌하르방 형태는 크기가 크고 균형감이 잡혀있지만 대정현과 정의현 돌하르방 형태는 크기나 동세, 균형감이 왜소하다. 그렇지만 돌하르방의 표현형식은 같다. 야무진 눈망울, 치켜 올린 눈, 삼각형의 주먹코, 꾹 다문 입, 눌러쓴 둥근 벙거지, 길쭉한 귀, 두 손으로는 배와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 독특한 모습과 신체의 동세 등이 유사하다. 험상궂은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띠고 있어 보는 사람들에게 퍽 익살스러운 인상을 주기도 한다. 현존하는 돌하르방은 제주목의 23기, 대정현의 12기, 정의현의 12기로 47기가 남아있다.

 

최근 발견된 10세기 중국 요나라 석인상이 돌하르방과 거의 흡사하고, 돌하르방과 비슷한 형태 석상으로는 남태평양 이스터섬의 수백 개 모아이 석인상, 몽골·인도네시아·볼리비아·키르기스스탄 등 석인상 등 각국에서 분포되어 있으며, 한반도 각처에도 석장승과 동자석, 석인상이 있다. 형태는 다르더라도 돌하르방과 대부분의 표현형식은 유사하다.
돌하르방과 석인상은 돌로 액운을 막아주는 부적으로 기능을 해왔던 조각상이다. 돌하르방은 성 입구에 세워져 수문장 기능과 함께 마을 방사탑처럼 액운은 막아주는 기능을 수행해왔던 전통 조각상이다. 외국 석인상 모아이는 대지 위에 세워졌다.

 

그런 제주문화의 원류인 돌하르방의 표현형식을 모티브로 삼았다. 조각 ‘돌하르방’ 연작은 제주 현무암의 재질에 가까운 재료인 발포석고로 표현했다. 전통적인 돌하르방의 조형성을 다양한 시각에서 재해석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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